|
별다른 경험도 수완도 없던 그는 결국 2년만에 양화점을 포기해야 했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기에는 면목이 서지 않았다.
사업에 실패하고 터를 잡은 곳은 명동. 남의 가게에서 일하고 받읃은 월급 8천원으로 자신의 미래를 다져 나갔다. 10여년의 고생 끝에 김동주 씨는 작지만 자신의 점포를 갖게 되었다. 작지만 그의 꿈이 고스란히 담긴 ‘명동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명동사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번창을 거듭했다. 홀로 시작했던 점포의 규모는 그때보다 배로 커졌으며 수선 종류도 구두 뿐 아니라 핸드백, 의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지금 이곳에 몸을 담고 일하는 직원마도15명인데다 하루 200∼250개 정도의 수선이 들어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IMF요? 오히려 터지고 나니 일감이 작년에 비해 15%나 늘어난 거 같아요. 조금만 망가져도 내다 버리던 때는 이제 갔습니다. 요즘은 여러번 고쳐서 새 것처럼 쓰는 이들이 많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외제품 일색이었는데 지금은 국산 제품 수선 의뢰도 많이 들어 옵니다.”
명동사야말로 IMF 시대의 불황을 모르는 직종이라며 요즘들어 자신의 직업에 더 만족하게 되었다고 김사장은 뿌듯해 한다. 또 젊은 손님이 많아진 것도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확실히 있는 사람들이 더 절약하며 살더군요. 지금까지 내가 맡은 일감의 주인들을 보면 국회의장도 있었고, 기업체 사장, 교수들등 모두 우리니라에서 한몫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없는 사람들이 더 쉽게 물건을 버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