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내용
제목 수선전문점 "명동사"
글쓴이 명동사
날짜 2017-01-17 [15:52] count : 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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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전문점 ‘명동사’김동주 사장

꼬장꼬장한 줏대속의 자존심

압구정 ‘명동사’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바로 김동주 사장의 얼굴이 보인다. 매서운 칼바람을 맞고 들어와 반쯤 정신이 나가 보이는 방문객에게 그는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아마도 따뜻한 차를 한 잔 권할지도 모른다. 그의 차분하고 인정있는 친절속에서 방문객은 구두를 고치러 왔다는 생각을 잠시 잊고 친한 이웃집 아저씨를 만나러 온듯한 착각에 빠져들 것이다.

원래 명동사 본점은 이름처럼 명동에 위치해 있다. 명동에서 처음 시작한 신발 수선의 일이 지금은 워낙 덩치가 커지고 확장되어서 압구정에도 지점을 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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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때 서울에 올라와서 구두닦이,직업소개서 등에서 안해본 일이 없다는 김동주 사장은 24세 때에는 집안의 논을 팔아서 양화점을 차리기도 했지만 2년 만에 문을 닫는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들떠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월급쟁이 생활을 다시 시작한 곳이 바로 명동사이다. 초봉 월8천원에 구두수선을 시작했다.

사장과 단둘이 일하던 중 사장이 명동사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동주 사장은 작은 명동사를 인수하고 본격적인 경영에 들어갔다. 그것이 벌써 30여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이제 명동사는 구두와 핸드백 등 각종 가죽 제품을 가장 완벽하게 수선할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의 ‘완벽한 수선’이라는 노하우가 명품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귀가 솔깃한 일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이제 명동사는 명품을 수선하는곳으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10여년 전만 해도 캐주얼 운동화의 유행으로 가죽제품을 수선하는 시장이 사양길에 이를 정도였으나, 수입자율화가 되면서부터 서서히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 명동사는 현재 명동은 물론 압구정동에 점포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자란 두 아들이 각각의 점포를 지키고 있다. 명동 점포는 작은아들이 5년전부터 맡아오고 있으며, 압구정의 점포는 큰아들이 7년 전부터 맡아오고 있다.

일단 그에게로 오는 제품은 어떤 제품이건 고객이 원하는 대로, 또 제품의 원상태로 수선을 한다. 가져오는 제품이 거의가 고가이다 보니 고객들도 제품이 원래 모양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실밥이 터진 경우는 원래 있던 바늘구멍에 맞추어 손으로 바느질을 한다. 따라서 바늘구멍이 새로 생기거나 모양이 변하는 일이 전혀 없다. 작은 부품 하나까지도 금형을 떠서 그대로 만들어주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한다. 고객들은 그것을 믿고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단골이 된 고객은 명동사의 나이와 같은 세월을 지니며 고정 고객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 아니 이제는 그들의 아들,딸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하니 명동사의 신뢰성은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발리, 구찌, 페라가모, 프라다 등의 명품이 이곳 명동사로 모이다보니 ‘명동사’란 이름을 빌려쓰거나 혹은 비슷하게 이름을 붙이는 점포도 생겼다고 한다. 김동주 사장에게 ‘명동사’란 이름은 자기 자신이나 마찬가지이다. 구래서 그는 최근 그 이름을 지키기 위해 서비스 부문에서 특허등록을 신청했다.

대를 이어 찾아오는 고객들을 위해 명동사에서도 대를 이은 장인 정신으로 보답하고 있다. 김동주 사장의 두 아들이 그의 기술과 정신을 이어받아 이제 어엿한 기술자로 그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는 다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던 둘째아들도 자기의 일을 사랑하며 즐기게 되었다. 자신이 쌓아 놓은 작은 벽돌 위에 한 장씩 또다른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는 아들이 그에게는 그저 대견하게만 보인다. “지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들 녀석들이 건강하게 자기 맡은 일에 소임을 다하는 겁니다. ”그의 바램은 너무나 소박하다. 자신이 했던 것처럼 아들들이 부지런하고 건강하게 일에 최선을 다하기만을 바란다.

작은 구두 수선공으로 시작해서 지금의 사업체로 키운 김동주사장, 정도를 걸으려는 가치관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공이 가능했다. 아들들에게도 늘 이르는 말은 외상거래를 절대하지 말고 없어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절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줏대야말로 일에 애착을 갖게 하고 정성을 다하게 하는삶의 조력자이다.

한달에 4천만원 정도가 인건비로 나가는 중소기업체를 지닌 사장이지만 아직도 1250만원에 사서 살던 연립주택에 20여년 넘도록 살고 있다. 고향이 전라남도 장흥에 노년을 보낼 집을 지어 마련해 두었지만 언제 내려갈지는 요원하다고 한다. 일을 떠나서는 살맛이 안 난다는 그의 말속에서 일을 사랑하는 순진하고 어린 구두 수선공의 얼글이 오버랩된다.

글 박정임(자유기고가) / 사진 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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